일본만화에 빠져 살던 저에게 10년전 읽었던
이 브이 포 벤데타는 충격 그자체였습니다.
사실 이런 좋은 책을 꾸준히 소개해주는 시공사에게
큰 감사를 드리는게 마땅합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를 시공사가 개척한게 분명하고,
시공사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좋은 품질과 가격으로 한국에 소개되지 못했을거에요.
네이버 블로그에는 오래전에 소개했지만,
워낙 오래전이라 한번 더 여러분께 소개하고픈 책은
바로 앨런 무어의 작품 '브이 포 벤데타' 입니다.
앨런 무어 - 나무위키 (namu.wiki)
앨런무어는 나무위키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유명한 그래픽 노블 스토리작가입니다.
SF계의 노벨상인 휴고상등을 수상한 대형 작가지요.
브이 포 벤데타는 독재가 행해지는
20세기 말의 영국이 그 무대입니다.
권력자는 경찰을 풀어 사람들을 감시하고,
사람들에겐 질서유지라는이유로
강력한 감시가 행해집니다.
브이는 이런 시대에서 정부의 실험실에서
실험을 당한 가엾은 실험체였습니다.
그는 그곳을 극적으로 탈출한 후,
자신에게 잔혹한 실험을 가했던 이들을
찾아가 죽음의 복수를 합니다.
그는 복수에 이유를 달지 않습니다.
복수는 폭력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용서는 절대로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수입니다.
법과 제도는 당한자의 복수앞에 무력합니다.
자유란것은
자신의 행위를 온전히 감당하고,
타인으로부터의 제약을
모두 벗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돌려차기하거나
자신의 어린 딸을 화장실에
내장이 튀어날올때까지 강간하거나
수십억의 전세사기를 친 인간들이
법과 제도라는 틀의 뒤에 숨어,
뒤로 돈을 받는 법원 검찰관계자들과
전관 변호사들과 결탁하여 무혐의, 혐의 없음, 정상참작등의
결과를 얻어내도 막상 당한자들은 사회의 제약과
법이무서워서 가해자들의 따귀한방 못때리는게
현대의 법이라는 제도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지못하는거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사회의 제도와 감시아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전세사기 재판이고 뭐고 내 돈 가져갔으면 돌려주면 그만이지
안돌려주는 이들을 법리로 보호하며 수개월에서
수년을 끌며 무죄로 하거나 범죄의 미나모토(근간)들이
법과 인맥의 뒤에 숨어 피해자들로 부터 사기친 돈으로
법률직들을 고용하거나 검찰공무원에게 뒷돈을 대어
혐의 없음으로 무마시킵니다
전세사기뿐만 아니라 각종 금융사기 담보물사기등 다양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원래부터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게 아니라 강자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태생이 그러하기에 문구 몇개에
피눈물을 흘리며 당하기만하는
서민들은 아무런 복수도 하지 못합니다.
이에 반해 브이의 폭력으로 일관한 복수는
정확하게 복수해야할 대상만 노리고
빠르고 신속하게 복수합니다.
복수이전에 예고를 하여,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고,
진정한 죽음이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절대 피해갈수 없음을 알게합니다.
한때 우리는 코로나정국에서
우리 언론은 우리의 대응에 각국에서
찬사를 보내는 거처럼 광고했지만
실상 유럽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행해지는 앱설치, 격리앱, 물품지급, 동선파악등을
정부의 감시로 규정하고 매서운 비판을 가했었죠
당시 프랑스나 영국인들중 일부는 한국식의 코로나 대응에
혐오수준의 디스를 보냈었습니다.
이 말을 굳이 하는건 우리나라 정부가 잘못했다는게 아닙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왕의 목마저 자르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유럽인들의 머리속에는
'자유없는 정의는 절대 있을수 없다' 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만화의 주제도 그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념과 사회를 위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들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한 그것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지요
아무리 주변인을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질병이라도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건
그들에겐 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자랑스럽게 그걸 했습니다.
하지 않는 자들을 철저히 따돌리고 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요
백신도 3차까지 1차도 맞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그들은 집단의 복리라는 이름으로 비난 받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백신을 강요할 수는 없는게 사실입니다
그들에겐 자유가 있으니까요
질서와 사회적 이익를 들먹이며 그들의 몸에
미지의 백신을 맞기를 강요하는 많은 무리들에 섞여
그들을 비난했다면 글쎄요…
그건 제가 보기엔 그분들이 미개한게 맞는거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선조들이
수천만명의 목숨과 눈물과 노동으로 맞바꾼겁니다
그런 자유에 정부가 무슨 이유라도 한발짝이라도
부당하게 들이고 사람을 감시하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큰일이란걸 유럽인들은 알고 있는거지요
참고로 저는 2차까지 맞았습니다.
3차는 바빠서 못맞았고요
법원의 상징과도 같은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브이는 독백합니다.
법과 질서란 것으로 사람들을 얽어매고
마치 자유란 것을 주는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군대와 경찰, 디지털감시와 행정시스템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간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통렬한 공격을 보여줍니다.
'네년은 다른 남자와 동침했어,
그리고 그 남자가 네년을 군화발로 짓밟게 허용했어.'
나의 또다른 여인은 '무법'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아무것도 깨지 않았어'
에 에피소드의 이비는 자유처럼 보이는
감옥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행복이라는 이름의 감옥속에.
이 에피소드도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행복이란 가장 달콤한 이름의 감옥이지' 란
말은 정말 크게 다가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던거지요...
행복하기 위해서 우린 너무도 행복하지 않은 짓을 많이 합니다.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얻기전에 순간 망설입니다.
자유는 무서운 것이거든요.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할때를 생각하면 알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건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온전히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살아나갈 힘이 생기고,
또 다른 가족이 생기고 삶은 이어지는 것이지요
최근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자유롭고 싶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어느정도 반다리 걸치고
예속되어 있는 삶을 원해서 인지도 모릅니다.
자유를 맞는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순간 인간은 공포에 질립니다.
혼자가 될거라는 공포, 홀로 늙어죽을 거라는 공포.
그 공포에 굴복하여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또는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생활로
타인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딩동댕. 결혼이지요... 물론 비하가 아니라. 일종의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하면서 자유롭게 됐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또 다른 타인에게 얽매여, 아무리 좋게본다해도
그의 취향과 눈치를 보면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거니까요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감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동성애가 하나의 이슈로 제시되고 있지요
(레즈비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워낙에 동성애에 공격적이라
뭐라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감정이란것에 동의하신다면
자신과 반대의 성만 사랑하는게 정상이니
그걸 하지 않는 자들을 혐오하고 증오한다면
반대로 본인들이 반대의 성만 사랑할수 있게
강요당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볼수 없을까요?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애자들도 그러고 보면, 동성만 사랑하도록
뭔가 무슨 이유로 강요되어진게 아닐까요? 무의식적으로…
실제로도 그리스 상류사회는
양성애자 집단이 대부분이었고
사랑에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엔 이성애와 동성애가 오히려
심리적으로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당하고 있는
정신병일수도 있습니다
양성애만이 정상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실제로 역사상 많은 천재들이 양성애자였습니다…
제가 양성애자란 말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사회에서 동성애나 다른 성적취향에 대한
논쟁이 '옳다. 그르다. ' 로 행해지는 미개한 사태는
이제 그만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이란 것은 개인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근간입니다.
인간을 가장 원초적으로 나누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그건 성별인거고, 섹슈얼리티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섹슈얼리티란 것은 간단히 말해서 성적 욕망인데
성욕만큼 원초적인 욕망이 어딨을까요?
개인의 성적욕망에 대해, 타인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수 있는
그런 자격이 과연 있을까요? 있다고 말하는 그자들이
정말로 위험한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만 있다면
상대에게 죽음마저 강요할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제가 삶에서 가장 경계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대화하다보면 딱 나오거든요...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꽃이 있고
진정한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꽃은 한번 받게 되면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서 피어있게 됩니다.
이를 부정하는 일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이를 반드시 지키는게 인간의 가장 소중한 일이란걸
이 에피소드에서 보여줍니다.
또한 동성애자들이 왜 그렇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게이 퍼레이드를 하는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에겐 존재를 부인당하고 숨어지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거지요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이비는
강요된 대답에 절대로 응하지 않고
차라리 죽는 쪽을택합니다. 스스로의 장미를 지킨 것이지요.
네이버 블로그에 쓴 다른 제글에도 있지만,
사랑했고, 또 사랑하고 있는 젊은 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것이 있습니다.
진짜 사랑이라면 가슴속에 꽃이 피듯,
항상 피어있는 무엇인가가
사랑후에도 남아있게 됩니다...
그것이 사랑인겁니다.
지금 없더라도, 그 순간에 남긴 것고 깨달은것
그것이 사랑이란 형태로 가슴에 남아 있는것이고
그래서 또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되고
삶을 더 잘살아갈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니 그나 그녀가 떠났다고 해서,
변했다고해서 원망과 분노에 휩쌓이지 마세요.
그나 그녀에서 받은것이 나에게 괴로움이 될때
상대방은 오히려 날 더 두려워하게 되고 더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나 그녀가 남긴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그 씨앗을 뿌린이도
다시 웃는 얼굴로 마주할날이 분명히 오게됩니다.
물론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거지요
그나 그녀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지만
내 마음속에서 그것을 키운것은 나거든요.
그러니 온전히 그 사랑은 내것입니다.
누가 찾아주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서 향기롭게 피어있고
그날들을 뒤돌아볼 때 항상 웃음짓게 해줍니다.
저도 십년을 만난 연인이 있었더랍니다…
그 연인은 항상 제 안에서 웃고 있습니다
아무런 원망도 아무런 그리움도 없습니다
사랑했었다는 그 사실로 충분합니다…
전 브이 포 벤데타를 정말 여러번 읽었습니다만
현재 한국인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일단 정치색이 너무 강하고,
무정부적인 색채도 강한데다가
스토리나 그림이 우리정서와 맞지 않지요
삶의 모순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저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릴법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브이포 벤데타에서 말하듯
협박당하지 않는 자아
그런자아를 가진자가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볼수 있을겁니다
(불교적인 시각에선 자아의 구속에서 마저 벗어나야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었을때 거리낌이 있다면,
이미 협박당하고 있는겁니다.
여길 떠나면 뭐하고 살래?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저는 제일 혐오스럽더라고요
니가 하고 살게 없다고
내가 하고 살게 없을거라는 생각은
왜하는건지...
뭐하고 살래? 라니... 대체 내가 뭘하고 살던 니가 왜...
마찬가지로 지금 그만두면 뭘하지?
가족들의 생계는?
아이들의 등록금은?
집 대출금은?
물론 이미 그런 길로 접어든 이들에게
갑자기 하고싶은걸 하고
걍 다 때려치라고 말하는건 어불성설일겁니다.
하지만 찾아보면 어느정도는 타협점을 찾을수 있겠지요
이런 저런 조건에 눌려, 천천히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까지 늙어죽어가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일어서세요
가슴속에 품었던 꿈을 실현하고,
나에게 나쁘게 대하는 존재들에게
당당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화를 내고
관계를 정리하세요
나를 웅크리게 하는 존재들에게
보란듯이 열심히 살아보세요
그리고 100년도 못살 그 필멸자들을 잊어버리세요
협박당하지 않는 삶...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두들 그런 삶을 사시길
저도 그런 삶을 살기위해서 오늘도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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